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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

2014/4/15 11:01:05   source:kr.sdfao.gov.cn

  중국 동부의 중요한 해변도시이고 중국의 경제중심 도시이며, 또한 중국의 첫 연해개방도시 중의 하나이다. 국가 계획단열도시와 행정 副성급 도시, 중국해양과학연구센터이다.

  중국 요트의 도시로서 아시아 베스트 항해도시이며, 2008 베이징 제29회 올림픽과 제13회 패러올림픽의 요트경기의 개최도시이다.

  중국 우수한 관광도시, 중국 역사문화 유명도시, 전국문명도시, 국가 위생도시, 국가원림도시, 국가 절수형 도시, 국가 환경보호 모범도시, 전국 녹화 모범도시이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국에서 가장 매력이 있는 도시, 중국에서 거주하기 적합한 10대 도시, 특색이 있는 중국 10대 레이저도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구역,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만, 중국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 세계에 가장 추천할 만한 중국의 유명도시이다.

  중국 브랜드 도시, 중국 10대 브랜드 도시, 중국 10대 축제도시, 중국의 대중 스타도시, 중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국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도시, 국민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중국 10대 도시, 시민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도시, 세계를 감동시키는 중국 브랜드 도시이다.

  중국에서 가장 경제 활력이 넘치는 도시, 중국의 최고 비즈니스 도시, 기업가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도시, 중국 10대 제조업 경쟁력 도시, 중국에서 중국인 후예 상인에게 가장 매력이 있는 도시, 다국적기업의 투자가치가 가장 높은 중국도시, 세계은행이 선정한 중국 투자환경 금메달 도시이다.

  중국에서 해발 0m의 출발점(중국 해수면의 원점)이다.

  지리적 위치

  중국 산둥반도의 남단(북위 35°35”-37°09”, 동경 119°30”-121°00” )에 위치해 있는 칭다오는 황해에 임하여 있고 동쪽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국·일본과 마주하고 있다.

  행정구역

  칭다오는 현재 시남(市南), 시북(市北), 사방(四方), 이창(李滄), 노산(嶗山), 황도(黃島), 성양(城陽) 7개 구와 교남(膠南), 교주(膠州), 즉묵(卽墨), 평도(平度), 래서(萊西) 5개 현급 도시를 관할하고 있다.

  전체면적

  칭다오 관할구역의 전체면적은 1만 654㎢이며 그 중에 시내구역면적은 1,159㎢에 달하고 있다.

  전체인구

  칭다오의 상주 인구수는 850만명, 호적인원수는 763명, 그 중에 시내구역 상주 인구수는 350만명, 호적 인구수는 275만명에 달하고 있다.

  자연환경

  해변 구릉도시인 칭다오는 지세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으며 남북 양측이 우뚝 솟아오르고 동남쪽의 노산산맥에서 북으로 시내구역으로 연장하며, 옅은 바다의 해저에는 수중 여울, 현대 수하삼각주 및 바다 침식평야 등이 있다. 칭다오의 구불구불한 해안선은 산과 해만을 사이에 두고 있다. 해안선(영해 섬 해안선을 포함함.)의 전체길이는 863km, 그 중에 육지해안선은 731km에 달해 산둥성 해안선의 1/4을 점하고 있다. 면적은 0.5㎢에 달하는 해만 32개보다 크다. 현재 바닷섬이 69개이며 정착 주민이 있는 바다섬이 10개나 된다.

  기후

  북온대 계절풍 구역에 위치해 있는 칭다오는 온대 계절풍 기후에 속한다. 시내구역은 해양환경의 직접적인 조절과 동남 계절풍 및 해류와 해수의 영향으로 해양성 기후의 뚜렷한 특성을 띠고 있다. 즉 공기가 습윤하고 온도가 적당하며, 여름철에는 무덥지 않고 겨울철에는 엄동설한이 없으며, 연평균 강우량은 662mm, 여름철 평균 기온은 24℃, 겨울철 평균 기온은 0℃ 이상이다.

  도시를 상징하는 나무와 꽃

  칭다오 도시를 상징하는 나무는 히말라야삼목이고 꽃은 담쟁이꽃과 월계화이다.

  역사 연혁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는 칭다오는 중국 도교의 발상지이다.

  일찍 5~6000천년 전의 신석기 시대에 이곳은 동이인(東夷人)들이 생활 및 거주하던 주요 지역 중의 하나였으며, 풍부하고도 다채로운 대문구(大汶口)문화와 용산(龍山)문화 및 악석(岳石)문화를 남겨놓았다.

  상∙주나라 시대에 이곳은 중국 해염의 발상지로서 중국 “4대 고대 염장구역”과 “5대 고대항구”로 선정되었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이곳에 산둥지역에서 제2의 도시인 즉묵(卽墨)을 건설하였으며, “즉묵고성(卽墨古城)”(지금의 평도시 경내)은 지금까지 중국에서 가장 일찍 보존해온 고대 도시유적이다. 월왕 구천은 랑야(琅琊, 지금의 교남시 경내)대에서 회맹하여 한 세대의 패주가 되었다.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다섯 번이나 천하를 순회하고 랑야(琅琊)대에 세번이나 올랐다. 역사자료에는 중국의 최초의 원양항해는 서복(徐福)이 랑야(琅琊)에서 출발하여 조선과 일본에 갔다고 기재되어 있다.

  역사자료에는 소년시기에 불기(不其, 지금의 성양구 경내)에서 교동왕을 역임한 한무제(漢武帝)가 칭다오지역을 가장 많이 순회한 황제라고 기재되어 있다.

  당ㆍ송(唐宋) 시대에 이곳은 남북 해상운수의 “중계역”이었고 중국 북방연해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중추와 무역항구로 부상하였다. 송나라 때에 판교진(板橋鎭, 지금의 교주시 경내)에 “시박사(市舶司)”를 별도로 설치하여 대외무역을 관리하였다.

  원나라 때에 해상으로 식량을 운송하는데 편리토록 하기 위해 중국에서 유일한 해운하 —— 산둥반도를 가로 지르는 교래운하(膠萊運河)를 팠다.

  명∙청나라 때에 이곳은 중국 북방지역에서 중요한 해안방어 요새가 되어 교오(膠澳)라고 불렀다.

  1891년 6월 14일, 청나라 정부는 교오(膠澳)에 방어시설을 구축하면서 칭다오를 건설하게 되었다.

  1897년 11월 14일에 독일이 “거야교안(巨野敎案)”을 빌미로 칭다오를 차지함에 따라 칭다오는 식민지로 전락되었으며, 이로 인해 1898년에 청나라 유신파의 “무술변법”을 유발하였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폭발한 후 일본이 독일을 대체해 칭다오를 점령하였다.

  1919년에 칭다오 주권에 대한 회수를 도화선으로 일어난 “5.4 운동”은 중국 근·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1922년 12월 10일에 칭다오를 회수한 중국 북양정부는 칭다오를 통상항구로 개설하였다.

  1929년 7월에 국민당정부는 칭다오특별시를 설립하였고 1930년에는 칭다오시로 명명하였다.

  1938년 1월에 일본이 칭다오를 다시 점령하였다.

  1945년 9월에 국민당정부는 칭다오를 인수한 후 역시 특별시라고 불렀다.

  1949년 6월 2일, 화북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해방된 칭다오는 산둥성 직할시로 편입되었다.

  1981년에 중국의 15개 경제중심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1984년에는 중국의 14개 연해개방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1986년에는 5개 계획단열시 중의 하나가 되어 성 1급 경제관리권한을 받게 되었다.

  1994년에는 전국 15개 副성급 도시 중의 하나로 편입되었고 유명한 국가급 역사문화 도시로 부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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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산동성인민정부신문판공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