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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나무들은 중국 시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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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5 12:00:31   source:kr.xinhuanet.com

  “이 개암나무들은 이제 막 성숙했다. 아직 100년 가까이 더 자라야 한다. 이 나무들은 중국 시장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후손들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 남부 윌라맷 밸리(Willamette Valley) 수령 9년의 개암나무 농장에서 케빈 콜만은 신화사 기자에게 “나무 묘목을 심을 때는 자신을 위한 것도, 오늘을 위한 것도 아닌 후손을 위한 것이고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95% 이상의 개암 산지는 오리건주다. 특히 110여년 상업 재배 역사를 지닌 윌라맷 밸리에는 800여 개의 가족 농장이 개암 재배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콜만 씨네 가족도 이곳에서 6대째 개암을 재배하고 있다.

  중국은 이 지역 개암나무의 최대 시장으로 매년 60% 이상의 개암이 껍질째 중국에 판매된다. 껍질째 판매되는 개암은 외관 상태가 더 좋고 과실이 더 크며 껍질을 벗기기가 편리해 중국 소비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 시장의 발전 전망을 낙관하기 때문에 현지 개암 농가들은 최근 들어 재배 면적을 더 늘렸다. 콜만씨네 가족도 2017년 200만 달러를 대출 받아 농장을 확장했다. 미국 농무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 개암 풍년이 들어 생산량이 전년보다 약 60% 증가했다. 새로 심은 개암나무가 성숙함에 따라 향후 생산량이 해마다 늘 것으로 전망된다.

  콜만씨네 가족이 새로 심은 개암나무는 ‘제퍼슨’이라는 신 수종으로 옛날 수종인 ‘바르셀로나’에 비해 병충해에 더 강하다. 하지만 개암 농가들은 신 수종이 병충해에 강할지라도 미국발 무역분쟁에 따른 피해를 막을 방도는 없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정치는 알지 못한다. 나무 심는 것만 안다. 개암 재배업에 대해 무역전쟁은 좋은 일이 아니다.” 6대 콜만 가족의 일원인 블랙은 “우리는 양국의 무역에 이런 문제가 나타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중국 시장은 줄곧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큰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지 최대의 개암 가공 기업 사장인 래리 조지는 신화사 기자에게 관세의 영향으로 현재 대중국 수출이 왕년보다 절반이나 줄었다면서 중국 시장의 변동이 개암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2018년 10월 개암 수확 후의 초기 가격에서 중국 시장에 주로 공급하는 품종(제퍼슨과 바르셀로나)은 2017년의 96.5센트와 2016년의 1.18달러보다 훨씬 낮은 파운드당 62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리 로다코프스키 오리건주 개암위원회 회장은 이 가격은 재배업자들이 절대적으로 밑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재배업은 단기간 내에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 일례로 시비를 줄이면 필연적으로 개암의 생산량과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개암 농가들은 어쩔 수 없이 직접 심은 개암나무를 자르고 다른 과일나무로 종류를 바꿀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미는 콜만씨네 가족의 가장 젊은 6대 개암 재배농이다. 그녀의 오빠 블레이크는 오리건 대학교 농업과학과에서 개암재배업을 전공하고 있다. 6대째 내려온 가족사업에 대해 두 사람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그들 대에서 잔혹한 결정이 내려지질 않길 바라고 있다. 개암나무는 백 년 가까이 생장할 수 있다. 콜만씨네 가족은 중미 간에 일시적인 마찰을 전통으로 굳어지게 해선 안 된다면서 미래와 희망의 개암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도록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개암 재배업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의존한다. 우리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길 바라고, 중국 시장과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길 바란다. 우리는 중국이 필요하고, 중국도 우리의 제품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에이미는 말했다.

  수량 1살이 안된 개암나무 농장에서 에이미의 딸, 7대 콜만이 묘목 옆에서 놀고 있다. 에이미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부친이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내가 트랙터 옆에서 놀고 있은 것이다. 10살 때 나는 과수원에서 트랙터를 몰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그림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우리 가정과 아이들이 중국 친구들을 위해 계속해서 개암나무를 심길 바란다”고 말했다.(샤오링(曉淩), 예짜이치(葉在琪)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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