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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물고 키보드 치며 라이브 방송으로 집안 일으켜

2020/10/26 16:19:26   source:kr.people.com.cn

  26세 쑨야후이(孫亞輝)는 허난(河南) 신샹(新鄕) 핑위안(平原)시범구 양좡(楊莊)촌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의 라이브 방송 제목인 ‘쓸모있는 사람이 되다’(做個有用的人)가 더 익숙하다.

  4년 전 뜻밖의 감전사고로 90허우(90後: 90년대 이후 출생) 청년은 두 팔을 잃고 두 다리의 감각마저 잃었다. 작년 10월 그는 모 인터넷 플랫폼에서 10만 팔로우를 가진 농민 라이브 스트리머 중 한 명이 되었다.

  라이브 방송은 그가 삶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는 신의 한 수였다.

  그는 매일 8시간씩 라이브 방송을 하며 곰배팔로 마우스를 움직였고 젓가락을 물고 키보드를 눌렀다. 그는 ‘다상’(打賞: 중국의 온라인 팁 문화)은 모두 거절하고 성실하게 포장을 하며 필사적으로 특별한 성적표를 제출했다.

  처음 라이브 방송을 할 때에는 ‘1명’이 보았지만 9개월 뒤에는 ‘2만 7천 명’이 보았다. 시작할 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지금은 팬이 1만 명이 넘었다. 상품의 종류도 2 종류에서 20여 종으로 늘었다.

  현재 그의 상점은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하며 생활의 새로운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그는 “나는 이미 스스로를 정상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도 나를 동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비보

  쑨야후이는 2016년에 공사장에서 철강재를 운반하던 중 고압 전선에 부딪혀 중상을 입었다.

  병원에서 1년 반의 시간 동안 그는 왼손과 왼팔, 어깨 반쪽을 포함한 오른팔을 잃어버렸다.

  “손상된 피부를 제거할 때마다 의사는 거즈를 물고 있으라고 했고 천으로 내 눈을 가렸다.” 쑨야후이는 20차례 수술을 받았으며 피부 제거 때 마취를 할 수 없었다며 그때의 통증은 지금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어렵게 보존한 목숨이었지만 두 팔은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차례 피부이식을 통해 다리는 보존할 수 있었지만 감각을 찾지 못했다.

  만약 그 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쑨야후이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신혼방을 꾸미고 예전에 봐 두었던 인테리어 가게를 인수할 생각이었다.

  쑨야후이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인테리어를 배우고 있었으며 창문과 진열장을 익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반격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병원에 있는 1년 반의 시간 동안 소독약 냄새가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퇴원해 집에 돌아와 있으면서 쑨야후이는 절망밖에 느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 갇혀 모든 능력을 잃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천장 뿐이었다.” 쑨야후이는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절망적이었다고 말했다.

  그 시간 동안 그의 어머니인 천진메이(陳金梅)의 핸드폰 안에는 모두 ‘장애인’과 관련된 내용들 뿐이었다. 장애인은 어떻게 분발할까, 장애인의 재활, 장애인의 생활 방법…. “아들은 침대에 누워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천진메이는 아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고 재활 훈련을 권했다.

  “나는 이미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귀찮게 하지 마세요!” 쑨야후이는 자주 어머니와 싸웠지만 결국 어머니의 고집을 꺽지 못했고 슬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을 따라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집 바닥에 유아용 매트를 깔고 오늘은 3발자국, 내일은 5발자국을 걷게 했다. 나중에는 아버지가 손을 놓았고 그 후에는 어머니가 손을 놓았다.

  집에 돌아온 지 반 년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쑨야후이는 마침내 방에서 안채 문앞까지 혼자 걸어가는 연습을 했다. 문틀에 기대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바라보며 쑨야후이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고 후 그의 마음에 처음 들어온 빛이었다.

  돌파

  쑨야후이는 문까지 걸어가는 데 반 년이 걸렸고 마음의 문을 나서는 데는 3년이 걸렸다.

  침대에 누워 있는 몇 년 동안 인터넷은 그에게 많은 상상력을 주었다. 쑨야후이는 인터넷으로 라이브 방송을 많이 봤고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직업이기에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폐인처럼 지낸 지 3년, 그는 생활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고 어머니와 함께 라이브 방송으로 볶은 땅콩을 팔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타오바오(淘寶) 라방 제목을 ‘쓸모있는 사람이 되다’로 지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핸드폰 카메라 앞에 섰을 때에는 막상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카메라를 땅콩 볶는 어머니에게로 돌리고 자신은 핸드폰 옆에 숨어서 나오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쑨야후이는 “나는 인터넷 너머 낯선 사람이 화면에 팔 없는 남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 라이브 방송은 조회 수 그저 ‘1 명’뿐이었다. 첫 번째로 볶은 땅콩도 타버렸다. 이후 반 개월 내내 매일 이랬다. 수십 근의 땅콩을 볶았지만 주문은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첫 번째 주문을 받았다.

  장시(江西) 주문으로 쑨야후이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빛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정신을 차리고 매일 8시간씩 라이브 방송을 했고 생활에 다시 규칙이 생겼다. 쑨야후이는 “그 주문으로 0.5위안(약 85원)를 벌었다”면서 “0.5위안를 벌 수 있다면 나는 완전히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루 십여 명의 사람에서 하루 일이백 명이 되기까지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의 수는 천천히 늘었다. 쑨야후이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카메라 앞에 서 방송을 시작했다.

  쑨야후이는 “처음에 다른 사람이 하나 물으면 내가 대답을 해 주는데 말을 마치면 얼굴이 새빨개졌다”라고 말했다.

  경험과 자원을 쌓기 위해 그는 플랫폼의 모든 라이브 스트리밍 행사를 신청해 참가했다. 처음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그는 아예 계속 라이브 방송을 했으며 자주 12시간씩 방송을 했다.

  “사람이 없을 때에도 제품을 설명하고 혼잣말을 하며 연습했다.”그는 매번 신제품을 소개할 때마다 제품을 미리 숙지하고 5~6일 전부터 미리 연습을 했다.

  파죽지세

  “내 방송을 보러 사람이 들어오면 나는 감격했다.” 쑨야후이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해서 주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주문율이 높아지면서 제품과 서비스에서 인정받았다고 확신했다.

  쑨야후이는 고객의 구매 체험을 중시했다. 새로운 제품을 들일 때마다 반복해서 고르며 많은 자료를 보았다. 물건을 팔 때마다 고객에게 피드백을 받아 물품에서 포장까지, 심지어 종이상자와 테이프의 밀봉 방식도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

  라이브 방송으로 계란을 팔 때였다. 상품의 특성상 물건을 받으면 몇 개는 깨지는 일이 발생했다. 쑨야후이는 모든 고객에게 ‘디지털 훙바오(紅包·돈봉투)’로 보상해 주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되돌아온 훙바오는 쑨야후이의 마음에 다시 빛이 되주었다.

  나중에 쑨야후이는 주민들을 대신해 농산품을 팔며 함께 수입 증대를 도왔다. 마을의 땅콩, 옥수수, 복숭아, 부추, 능금, 계란, 배 모두 방송에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를 만나면 “우리 집에 뭐뭐가 곧 익을 거 같은데 인터넷에서 팔 수 있을까?”라고 물었고 그의 어머니는 바빠졌다.

  현재 쑨야후이의 상점에는 20여 종의 제품이 있으며 ‘다이훠’(帶貨: 스타, 셀럽이 어떤 상품의 유행을 일으키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의 길도 정상 궤도에 올랐다. 얼마 전 ‘농민 풍년제’ 기간 그의 라방은 1만 6천 명이 시청했으며 1일 매출액 2천 위안을 달성했다. 인기가 폭발하자 주문도 급증했으며 많을 때에는 하루 500건이 넘었다.

  하지만 쑨야후이는 스트레스도 받았다. 제품을 제때 발송하지 못할까 봐, 서둘러 포장하다 품질 감독에 소홀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를 저버릴까 두렵다”였다.

  쑨야후이는 새로운 계획도 세웠다. 인터넷 상점을 통해 마을에 농산품 협동조합을 세우고 마을의 특산품을 모아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

  쑨야후이는 “미래는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나는 더이상 두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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